[책 리뷰] 조수경 -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2021. 3. 27. 10:49문학갈피/책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 조수경


"우울증은 죄가 아냐. 아무 잘못 없어. 우리가 뭐, 사람을 죽였어? 아님, 사기를 쳤어?"

누구든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사랑하고, 자기다운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삶이란 소중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안락한 죽음이 필요하다.

타인의 삶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으므로,

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최선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 생의 끈을 놓으려 한다면, 나는 그의 손을 꽉 붙잡을 것이다.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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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앤드론즈-Don't break your heart

 

영혼이 사경을 헤맬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나에게는 내가 죽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책을 자꾸 들여다봤던 것 같다. 

지금은 죽음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습관이 좋지 않고 또 유의미한 결과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생각이 꼬여있었냐면 '삶의 이유는 곧 내 죽음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인식해 

그 대상체를 속으로 비난하고 또 그렇게 뒤틀려진 나를 혐오하는 게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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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무게를 내려놓으라고 말해준다.

엄청 무거운 쇳덩이를 지고 있었는데 누가 와서 '이건 쇳덩이가 아니라 단지 물에 젖은 솜이야' 하고 말해주는,

여전히 팔은 아프지만 그래도 왠지 시간이 지나면 물기가 말라 가벼워질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서늘하고 뽀송하고 또 향기로운 그런 책이었다. 


 

 

죽음을 존중해주는 사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센터가 들어선 뒤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었다.
전문가들은 충동적인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언제든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 불치병 환자들에게 안정을 준다는 것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센터에서 평온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러니까 정말 죽은 외에는 답이 없는,
죽음이 필요한, 죽음이 최선인 그런 경우였다.

스스로 죽을 권리를 인정한 시대.
아이러니하지만, 세상은 그만큼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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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꽤 소중하지. 필요한 거고.
그렇다고 해서 삶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삶이 더 간절한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더 아픈 건지도 몰라.
삶이, 진짜 살아 있는 삶이 너무나 간절해서.

-본문 中-

 

자기계발과 경쟁 사회에 지친 사람들은 점차 휴식의 중요성을 인지했고 그 여파로 한동안 힐링 에세이집이 서점가를 휩쓸었었다.

현재는 주식, 재테크와 함께 죽음에 관한 서적들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치열하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아버린 사회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것 같다.  

 

 

최근 유퀴즈를 통해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 김새별씨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고인들이 남긴 흔적들을 정리하다 보면 그분들은 남들 못지않게 치열한 삶을 살았고

삶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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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지 못한 죽음. 

한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불가피한 피해와 민원, 그로 인해 생기는 비판적인 인식들로 인해 죽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을 영위하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누구도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은 없다.

 태어나는 것에 선택권이 없으니 어떠한 방식의 죽음이라도 그 존엄성은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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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안락사가 합법인 세상에 사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에 대한 존엄성을 지킬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대한 욕구는 그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서부터 싹이 트는 것 같다.

만약 안전한 곳에서 존중받으며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갈까? 

(물론 단순히 안락사 제도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경제적 지원과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부수적인 제도들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안락사의 이점은 죽음에 대한 지나친 욕구와 두려움을 절제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충동적 자살을 막을 수 있고 살아가는 동안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 살기를 권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죽음에 대해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 즉, 죽음을 생각해 봤고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힘든 일이다.

이 사람 너무 힘들어하는데 내가 말리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내 이기심에 이 사람을 붙잡아 두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정말 많이 든다. 왜냐하면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만큼 소중하다. 그 사람도, 그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도.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러한 마음을 잘 전해주고 싶다.

 

끝으로 힘이 들 때 우연히 보았던 논어의 구절이 있다.

모든 게 비관적으로 보이던 때 이 글 역시도 처음에는 비관적으로 읽혔었지만, 곱씹을수록 삶에 힘이 되어준 글이다. 

현자는 삶을 도피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삶이 그에게 해를 준것도 아니고,
삶의 부재가 악으로 생각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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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가장 긴 시간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시간을 향유하려고 노력한다.